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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을 만들지 않았는데, 숲에서 한 곡을 가지고 내려왔다 오늘 , 오랜만에 아침 산길을 걸었습니다.처음부터 무엇을 만들겠다는 생각은 없었습니다.그저 아침의 숲을 걷고 싶었습니다.제 공간을 나와 눈을 들었을 때,먼 산의 꼭대기에 아침 햇살이 먼저 내려앉아 있었습니다.아래쪽 숲은 아직 짙은 그림자 속에 있었고높은 곳부터 빛이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습니다.아침은 산꼭대기에서부터 내려오고 있었습니다.숲으로 들어서자 산새들이 활발하게 아침을 열었습니다.그 소리를 듣다가 문득 생각했습니다.“풀벌레들은 다 어디 갔지?”조금 더 귀를 기울이자그제야 뒤에서 들려왔습니다.찌르찌르, 찌찌찌.없었던 것이 아니라내가 아직 다 듣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산길에는 알밤이 하나둘 떨어져 있었습니다.고운 알밤 몇 알을 주워 가방에 넣었습니다.오랜만에 아침 산행을 나온 나에게산이 건네는 작은.. 2026. 9. 17.
첼로를 따라갔다가 바흐를 만난 날 — 음악은 내가 살아온 시간을 보여주었다 오늘은 첼로를 따라 걷다가 바흐를 만난 날이다.처음부터 바흐를 공부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그저 한 음악에서 들려온 첼로의 깊은 음색이 마음에 오래 머물렀다.또 다른 첼로를 찾아 들었다.같은 악기인데도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졌다.어떤 첼로에서는 심연에 빠져 헤매다가 다시 자신을 찾아가는 움직임이 보였고,어떤 첼로에서는 가을처럼 풍성하고 넉넉한 기운이 느껴졌다.그러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프렐류드를 만났다.처음에는 밀레의 「만종」 같은 풍경이 떠올랐다.하루를 열심히 살아낸 사람들이 저녁 들판에 서서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듯했다.색깔은 회색에 가까웠다.묵직하고 고요했다.그러나 음악은 그곳에 머물지 않았다.겨울을 지나 이제 막 봄을 준비하는 것처럼,꽁꽁 언 얼음 아래에서 물이 흐르기 시작했다.아직 .. 2026. 9. 16.
꽃보다 아름다운 가을|피어나는 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꽃보다 아름다운 가을|피어나는 것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가을이 깊어지고 있다.오늘 창밖으로 들어오는 햇살은 유난히 맑고 깨끗했다.밖으로 나가 한 걸음씩 걸어보니 햇살이 닿는 자리와 그늘의 경계까지 또렷하게 보였다.나는 한동안 그 빛 속을 걸었다.그리고 문득 오래전, 단풍이 절정이었던 어느 가을날의 풍경이 떠올랐다.온 산이 빨강과 주황, 노랑으로 물들어 있었다.아직 초록을 간직한 잎도 있었고, 여러 색이 겹쳐지며 더 깊은 빛을 만들어내는 곳도 있었다.그때 나는 정말 감탄했다.“꽃보다 아름답다.”꽃은 피어나고, 잎은 물든다봄의 꽃은 피어나며 아름다움을 보여준다.그런데 가을의 잎은 조금 다르다.한 계절을 막 시작하며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많은 시간을 지나온 뒤 자기만의 색을 드러낸다.겨울을 견디고.. 2026. 9. 16.
몸에만 숨이 필요한 줄 알았다 | 마음에도 숨이 필요했다 오늘 음악 한 곡을 만들었습니다.제목은〈오늘, 나에게 돌아오다〉.음악을 만들고 한참을 들었습니다.처음에는 그저고요한 곳에서 나 자신에게 돌아오는 느낌을음악으로 표현하고 싶었습니다.그런데 음악을 다 만들고다시 청자의 자리에서 바라보다가뜻밖의 말 하나를 만났습니다.‘정서적 충전.’그 말을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충전이라…….몸이 지치면 쉬어야 한다는 것은 압니다.숨이 차면 걸음을 늦추기도 하고,피곤하면 잠을 청하기도 합니다.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몸에만 숨이 필요한 걸까?마음에도숨이 필요한 것은 아닐까.그 순간‘마음의 숨’이라는 말이 떠올랐습니다.마음의 숨.생각해보니 우리는몸의 숨이 가빠지는 것은 금방 알아차리면서도마음의 숨이 가빠지는 것은모르고 지나갈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해야 할 일을 하고,.. 2026. 9. 14.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고, 산길에서 사람을 만났다〉 〈고요 속에서 나를 만나고, 산길에서 사람을 만났다〉어제는 몸이 많이 피곤했다.일찍 출근해 일찍 퇴근했지만몸으로 느껴지는 피로는 생각보다 깊었다.그래서 욕심내지 않았다.조금 더 쉬었고,충분히 잠을 잤고,아침에 일어나서는 누운 채 한참 스트레칭을 했다.따뜻한 물로 샤워하고아침 식사도 챙겨 먹었다.그리고 오늘,요가 수업에 가기 전 곤지암도서관 뒷산 산길에 들었다.지난번 이 길에서는 바람이 나를 반겨주었다.나뭇잎을 흔들고내 몸을 스쳐 지나가며자기 존재를 마음껏 알려주던 바람이었다.그런데 오늘은 달랐다.그대로 멈춰라.마치 누군가 그렇게 말한 것처럼숲 전체가 멈춰 있었다.바람 한 점 없었다.멀리서 희미하게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가까운 곳에서 간간이 들려오는 몇몇 풀벌레 소리,그리고 짹짹거리며 들려오는 새소리.고요.. 2026. 9. 14.
사람을 읽고, 질문 하나를 가져왔다 사람을 읽고, 질문 하나를 가져왔다— 푸시킨에게서는 삶을,세네카에게서는 시간을 배운 저녁오늘 아침,우연히 푸시킨의 삶을 들려주는 콘텐츠를 만났다.처음에는 목소리가 좋았다.그래서 잠시 머물렀다.그러다 푸시킨이라는 한 사람의 삶으로조금씩 들어가게 되었다.한 사람의 일대기를 들여다보는 것은그 사람이 언제 태어나무엇을 이루었는지를 아는 것만은 아니었다.그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어떻게 바라보았는지,그리고 그것을어떻게 자기만의 언어로 바꾸었는지를살펴보는 일이기도 했다.푸시킨을 바라보다나는 질문 하나를 가져왔다.“이 사람은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어떻게 자기 언어로 바꾸었을까?”생각해 보니창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누군가의 훌륭한 작품을 만나고,배우고,참고할 수는 있다.그러나 마지막에는내 언어로 돌아와야 한다.발자.. 2026. 9. 12.